한국경제 연구 공백과 정책 판단 문제를 표현한 연구실 이미지

한국경제 연구 8%대 추락, 정책은 왜 현실을 놓치게 되나

한국경제를 직접 다룬 경제학 연구 비중이 8%대까지 떨어졌다는 분석은 그냥 학계 소식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한국 사회가 자기 문제를 설명할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저출생, 고령화, 지역 소멸, 수도권 집중, 자영업 과잉, 청년 고용, 부동산 쏠림,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격차 같은 문제는 모두 한국형 데이터와 제도를 깊게 파야 보인다. 그런데 정작 국내 주요 경제학 연구자들이 한국경제를 직접 다루는 비중이 줄고 있다면, 정책은 점점 더 수입된 이론과 부분적인 통계, 부처별 보고서에 기대게 된다.

내 판단은 이렇다. 연구자들이 한국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 한국 문제를 연구해도 보상이 약한 구조가 더 크다. 좋은 국제학술지에 실릴 가능성이 높은 주제, 정제된 해외 데이터로 빠르게 논문을 만들 수 있는 주제, 승진과 평가에 유리한 주제를 좇는 것은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다. 대학과 연구비, 학술지 평가, 데이터 접근성, 정책 반영 구조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든 결과다. 그러니 이 문제를 “요즘 학자들이 현실을 모른다” 정도로 비난하면 핵심을 놓친다. 진짜 문제는 한국 현실을 연구하는 일이 연구자에게 손해가 되는 시스템이다.

한국경제 연구 공백과 정책 판단 문제를 표현한 연구실 이미지
한국경제 연구가 줄어드는 문제는 학계 안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품질과 연결된 공공 인프라 문제다.

숫자가 말하는 것은 꽤 선명하다

보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연구원은 RePEc 기준 국내 기관 소속 상위 25% 경제학자 112명의 논문 6,149편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경제를 직접 다룬 논문 비중은 전체의 13.1%에 그쳤고, 특정 국가와 직접 관련 없는 중립적 연구는 66.5%, 해외경제 분석은 20.4%로 나타났다. 더 불편한 숫자는 최근 흐름이다. 한국경제 연구 비중은 2010년대 평균 15.7%였지만 2024년 8.1%, 2025년 8.4%로 내려갔다고 한다. 1999년 이후 최저권이라는 해석이 붙는 이유다.

세대별 차이도 중요하다. 1950~1970년대생 연구자 그룹은 한국경제 연구 비중이 10%를 넘는 것으로 소개됐지만, 1980년대 이후 출생 연구자 그룹은 5.1% 수준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초기 경력 6년만 따로 보면 평균 6.0%라는 분석도 있다. 젊은 연구자가 한국경제를 덜 다룬다는 것은 앞으로 이 경향이 더 굳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한국경제 연구가 줄었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국경제를 깊게 아는 연구자가 줄었다”가 된다.

물론 이 숫자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할 수는 없다. RePEc에 등록된 논문과 상위 연구자 표본을 기준으로 한 분석이기 때문에, 국내 학술지나 정책보고서, 현장 연구 전체를 완전히 포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점까지 포함해도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 성과를 기준으로 볼수록 한국경제 연구가 밀려난다면, 연구 경력의 핵심 보상 구조에서 한국 문제의 위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한국 문제는 논문 주제로 불리한가

가장 흔한 설명은 해외 학술지 중심 평가 체계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승진, 임용, 연구비 평가에서 SSCI급 국제학술지 실적을 중시하면 연구자는 그 기준에 맞춰 행동한다. 국제학술지에 실리려면 한국의 특수한 제도 설명보다 보편적인 이론, 국제 비교, 정교한 식별 전략, 장기 패널 데이터가 유리하다. 한국 주택시장, 한국 자영업, 한국 노후소득, 한국 지방재정처럼 맥락 설명이 많이 필요한 주제는 좋은 연구일수록 오히려 해외 심사자에게 설명 비용이 커진다.

그렇다고 국제학술지 중심 평가가 완전히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적 기준의 연구를 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상 유일한 보상 체계처럼 작동할 때다. 국제 저널에 잘 맞는 연구와 한국 현실을 깊게 파는 연구는 겹칠 때도 있지만, 늘 같지는 않다. 한국의 전세제도, 수도권 집중, 지역 의료 공백, 사교육, 고령층 자산 구조, 하청 생산 네트워크 같은 주제는 세계적으로도 흥미로울 수 있지만, 연구자가 이를 국제학술지 문법에 맞추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시간은 젊은 연구자에게 위험이다.

젊은 연구자는 특히 더 계산적일 수밖에 없다. 임용과 재계약, 승진, 연구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때 불확실성이 큰 국내 정책 연구보다 정제된 해외 데이터로 빠르게 논문을 쓰는 편이 합리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현실 도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연구자 개인에게는 생존 전략이다. 시스템이 그렇게 점수를 주는데 개인에게만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국내 데이터와 해외 학술지 중심 연구 인센티브의 격차를 표현한 이미지
연구자가 한국 문제를 피한다면 개인 취향보다 데이터 품질과 평가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

데이터 문제는 생각보다 더 크다

한국경제 연구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데이터다. 좋은 실증 연구는 좋은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미국이나 유럽 주요국은 장기간 축적된 가계·기업 패널 데이터, 행정자료, 연구자용 마이크로데이터 접근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반면 한국 데이터는 기관별로 흩어져 있고, 접근 절차가 까다롭고, 변수 정의가 바뀌고, 산업분류나 설문 문항이 중간에 바뀌면서 시계열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민간 데이터는 더 어렵다. 플랫폼, 카드, 통신, 유통, 부동산 거래 데이터는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

데이터 접근성이 낮으면 연구자는 주제를 바꾼다. 연구 의지가 있어도 데이터 확보와 정제에 몇 년을 쓰게 되면 경력상 손해가 크다. 반대로 해외 공개 데이터는 바로 분석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젊은 연구자가 한국경제를 연구하지 않는 것은 관심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연구 인프라가 약하면 관심은 있어도 연구가 나오지 않는다. 한국경제 연구를 늘리려면 “한국을 연구하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한국을 연구하기 쉬운 데이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개방을 대립시키지 않는 것이다. 민감한 행정·기업·가계 데이터를 아무렇게나 열 수는 없다. 하지만 비식별화, 보안 분석실, 원격 분석, 결과 반출 심사, 연구윤리 심사 같은 장치를 갖추면 더 많은 연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정책 실패 비용을 생각하면 데이터 인프라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다. 잘못된 정책 하나가 시장과 가계에 미치는 비용은 연구 플랫폼 구축 비용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정책은 연구가 비어 있는 곳에서 감으로 움직인다

한국경제 연구가 줄어드는 가장 큰 피해는 정책 품질이다. 정부는 늘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대출을 조이고, 물가가 오르면 세금을 낮추거나 지원금을 뿌리고, 청년 고용이 나빠지면 일자리 사업을 만든다. 그런데 그 정책이 누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축적된 연구가 부족하면 결정은 감과 정치적 압력에 가까워진다. 정책은 숫자 없이도 발표될 수 있지만, 숫자 없이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저출생 정책을 보자. 출산율이 낮다는 사실은 모두 안다. 하지만 어떤 지원이 실제 출산 결정에 영향을 주는지, 현금 지원과 주거 지원, 노동시간, 보육, 여성 경력 단절, 남성 육아 참여, 지역 일자리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훨씬 어렵다. 전국 평균만 보면 답이 안 나온다. 세대별, 소득별, 지역별, 고용형태별 효과가 다르다. 이런 문제는 한국 데이터를 바탕으로 장기간 검증해야 한다. 연구가 부족하면 정부는 매번 새 이름의 대책을 만들고, 효과가 애매하면 또 다른 대책을 만든다.

지역 소멸도 마찬가지다. 지방에 돈을 더 주면 인구가 남는가, 산업단지를 만들면 청년이 돌아오는가, 교통망을 깔면 수도권 흡입력이 더 강해지는가. 이런 질문은 정치 구호로 풀리지 않는다. 실제 지역별 데이터, 기업 이동, 통근권, 교육·의료 접근성, 주거비, 생활서비스를 함께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경제 연구 생태계가 이런 세밀한 현실 연구를 충분히 보상하지 않으면 정책은 계속 큰 그림과 구호 사이를 맴돈다.

기업도 손해를 본다

이 문제는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도 손해를 본다. 한국의 기업 환경은 매우 특수하다.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관계, 제조업 공급망, 플랫폼 수수료, 자영업 상권 구조, 노동시장 이중구조, 수도권 인재 집중, 가족기업 승계, 하도급 관행 같은 문제는 해외 이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업 경영과 산업정책에 필요한 연구가 부족하면 기업은 자신들의 경험과 컨설팅 보고서에 더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산업 전체의 문제를 개별 회사의 생존전략으로만 처리하게 된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바이오처럼 국가가 지원하는 전략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액공제와 보조금이 실제 국내 투자와 고용, 기술 축적으로 이어지는지 검증하려면 한국 기업 데이터와 산업 생태계 연구가 필요하다. 특정 기업의 실적만 보고 산업정책을 평가하면 착시가 생긴다. 대기업은 좋아졌지만 협력업체는 어려워졌는지, 수출은 늘었지만 국내 고용은 늘지 않았는지, 설비투자는 늘었지만 기술 인력은 부족한지 봐야 한다. 이런 연구가 약하면 정부 지원은 성과 검증 없이 계속된다.

경제학 연구가 정책 결정과 현장 데이터로 환류되는 회의 장면 이미지
한국경제 연구를 늘리려면 논문 수가 아니라 데이터, 평가, 정책 채택의 연결 구조를 바꿔야 한다.

반론: 학문은 국적에 갇히면 안 된다

반론도 있다. 경제학은 본래 보편적 이론과 방법론을 다루는 학문이고, 한국 연구 비중이 낮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젊은 연구자가 세계적 연구 주제를 택하고 국제학술지에 도전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국내 문제만 붙잡고 국제적 대화에서 고립되면 학문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걱정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한국경제 연구도 세계적 방법론과 연결돼야 힘이 생긴다. 한국만 특별하다는 식의 예외주의는 좋은 연구가 아니다.

하지만 이 반론이 맞으려면 균형이 있어야 한다. 세계적 연구를 하자는 말이 한국 문제를 연구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한국경제 연구는 세계적 연구가 될 수 있다. 전세제도, 초저출생, 수도권 집중, 플랫폼 노동, 고령층 자산, 반도체 공급망 같은 주제는 국제적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런 주제를 세계적 언어로 번역하고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와 평가 환경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학문을 국적에 가두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현실을 세계적 연구의 재료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해법은 애국심이 아니라 인센티브다

한국경제 연구를 늘리려면 연구자에게 “국내 문제도 좀 하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평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 국내 데이터를 활용한 엄밀한 실증 연구, 정책 채택 가능성이 높은 연구, 기업과 지역 현장의 문제를 해결한 연구가 국제학술지 실적과 별도의 평가 축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해외 저널 논문과 국내 정책 연구를 단순히 같은 점수표에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도 트랙이 필요하다. 국제학술 성과는 그대로 평가하되, 국가 난제 해결형 연구를 독립적으로 보상해야 한다.

연구비 설계도 바뀌어야 한다. 단기 성과 중심 과제는 한국경제의 구조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 저출생, 지역 소멸, 노동시장 이중구조, 산업 생산성 같은 주제는 몇 년짜리 단기 과제로 끝나지 않는다. 장기 패널 구축, 행정자료 연계, 민간 데이터 협약, 반복 조사, 정책 실험이 필요하다. 연구자가 한 번 데이터를 만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후속 연구자가 계속 쓸 수 있는 공공 연구 인프라를 남겨야 한다. 논문 한 편보다 데이터셋 하나가 더 큰 공공재가 될 때도 있다.

정책 반영 구조도 중요하다. 좋은 연구가 나와도 정부와 국회가 읽지 않으면 연구자는 다시 학술지 실적만 보게 된다. 연구가 정책으로 연결되는 공식 채널이 필요하다. 예산안, 세제개편, 부동산 대책, 고용 대책, 지역 정책을 만들 때 관련 연구를 의무적으로 검토하고, 정책 이후에는 효과 평가를 공개해야 한다. 실패한 정책도 연구 자료가 되어야 한다. 실패를 숨기면 다음 정책도 같은 방식으로 실패한다.

언론과 여론도 책임이 있다

한국경제 연구가 줄어드는 데에는 언론과 여론의 책임도 있다. 우리는 숫자가 있는 연구보다 자극적인 발언을 더 빨리 소비한다. 부동산, 세금, 연금, 최저임금, 주식시장 같은 주제에서 정교한 분석보다 진영에 맞는 결론이 더 잘 퍼진다. 그러면 연구자는 현실 문제를 다뤄도 욕만 먹고 보상은 적은 상황을 마주한다. 정책 연구는 이해관계자를 건드린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결론이 나온다. 그 불편함을 감당할 사회적 분위기가 없으면 연구자는 더 안전한 주제로 이동한다.

이 지점에서 언론은 연구를 단순 인용하는 데 그치면 안 된다. 숫자의 출처, 표본, 한계, 반론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정책 담당자는 자기 주장에 맞는 연구만 골라 쓰면 안 된다. 기업과 시민사회도 자기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결과를 무조건 공격하기보다, 방법론과 데이터로 반박해야 한다. 한국경제 연구 생태계는 연구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연구를 요구하고, 읽고, 비판하고, 활용하는 사회적 시장이 있어야 한다.

내 결론: 한국을 연구하기 쉬운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경제 연구 비중이 8%대로 떨어졌다는 소식은 불편하지만, 오히려 지금 구조를 고칠 기회이기도 하다. 핵심은 간단하다. 한국 문제를 연구하는 일이 연구자에게 손해가 되면 한국 연구는 줄어든다. 데이터가 흩어져 있고, 평가에서 덜 인정받고,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고, 여론전의 공격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젊은 연구자는 당연히 다른 길을 고른다. 개인을 탓할 일이 아니다. 판을 바꿔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한국형 데이터 인프라를 여는 것이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해야 할 일은 국내 실증 연구와 정책 기여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다. 기업이 해야 할 일은 현장 데이터를 닫아두기만 하지 말고, 안전한 방식으로 연구와 연결하는 것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연구 결과를 진영 싸움의 소재가 아니라 정책 검증의 도구로 다루는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맞물려야 한국경제 연구가 살아난다.

한국은 지금 수입 이론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너무 많이 안고 있다. 초저출생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수도권 집중은 압도적이며, 고령화 속도는 빠르고, 자영업과 부동산, 제조업 의존, 반도체 쏠림은 모두 한국적 맥락이 강하다. 이런 문제를 한국 데이터로, 한국 제도로, 한국 현장과 연결해 분석하지 않으면 정책은 계속 겉돈다. 그래서 한국경제 연구의 감소는 학계의 작은 뉴스가 아니다. 정책이 현실을 놓치기 시작했다는 경고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하나

첫째, 국내 데이터 연구를 평가하는 별도 점수판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국제학술지 논문만 가장 확실한 성과로 인정하면 연구자는 당연히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국내 실증 연구는 국제 저널 게재 여부와 별개로 데이터 구축 난이도, 정책 활용 가능성, 재현 가능성, 장기 축적 가치, 현장 기여도를 따져 평가해야 한다. 이것은 기준을 낮추자는 말이 아니다. 한국 현실을 다루는 연구에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과 공공성이 있으니, 그 어려움을 평가 체계가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정부 통계와 행정자료를 연구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연구자는 자료를 달라고 민원 넣는 사람이 아니라 정책 품질을 높이는 외부 검증자다. 익명화된 행정자료를 안전하게 분석할 수 있는 보안 환경, 기관 간 데이터 연계 표준, 변수 변경 이력 관리, 분석 코드와 결과의 재현성 검증 체계가 있어야 한다. 특히 세금, 복지, 고용, 교육, 건강보험, 부동산, 기업활동 자료는 서로 떨어져 있으면 정책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한 부처의 데이터로는 한 부처의 주장만 강해진다.

셋째, 정책 실험과 사후 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 한국 정책은 발표할 때는 거창하지만,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끝까지 따지는 일은 약하다. 지원금을 줬다면 어떤 계층의 행동이 바뀌었는지, 세금을 깎았다면 투자가 늘었는지, 대출 규제를 조였다면 실수요자와 투기수요가 각각 어떻게 반응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정책은 한 번 발표하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다. 정책은 가설이고, 현실은 실험장이다. 가설 검증 없이 이름만 바꾼 대책을 반복하면 정부도 시장도 학습하지 못한다.

넷째, 민간 데이터의 공공적 활용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카드 결제, 배달 플랫폼, 통신 이동, 유통 재고, 구인구직, 부동산 매물 데이터는 한국 경제의 미세한 변화를 가장 빨리 보여준다. 그런데 이 데이터는 기업의 자산이기도 하고 개인정보 위험도 있다. 그래서 무조건 개방하라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대신 공익 연구 목적, 엄격한 비식별화, 독립 심사, 결과 반출 통제,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를 묶은 협약 모델이 필요하다. 민간 데이터가 닫혀 있으면 정책은 몇 달 늦은 통계로 움직인다.

가장 위험한 결론은 연구를 홍보 도구로 쓰는 것이다

한국경제 연구를 늘리자는 말이 정부 입맛에 맞는 연구를 늘리자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 난제 해결형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정부 정책을 정당화하는 보고서만 늘어나면 더 나쁘다. 연구가 정책 가까이 갈수록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부 돈을 받더라도 불리한 결론을 낼 수 있어야 하고, 기업 데이터를 쓰더라도 기업에 불편한 분석을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가 권력과 자본의 설명자료가 되는 순간, 한국경제 연구의 신뢰는 더 빨리 무너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지원과 독립의 균형이다. 연구비와 데이터 접근은 확대하되, 연구 설계와 결과 공개는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정책 채택 여부와 무관하게 방법이 탄탄한 연구는 인정받아야 하고, 정부 주장과 다른 결과도 공론장에 나와야 한다. 한국경제 연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정부가 듣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정부가 듣기 싫은 말까지 근거 있게 생산되는 구조가 생긴다는 뜻이어야 한다. 그게 진짜 연구 생태계다.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은 연구의 방향이 아니라 책임의 배치다. 한국 사회가 한국경제 연구를 필요로 한다면, 그 연구를 개인의 희생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좋은 연구가 나오도록 데이터를 정비하고, 평가를 바꾸고, 정책이 연구를 사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현실을 설명하는 지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지식을 만드는 구조에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

체크포인트

  • 한국경제 연구 비중이 낮아진 원인을 연구자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평가·데이터·정책 연결 구조에서 봐야 한다.
  • 국제학술지 성과와 국내 정책 기여를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별도 평가 축으로 설계해야 한다.
  • 행정자료와 민간 데이터를 안전하게 결합할 수 있는 연구 플랫폼이 필요하다.
  • 저출생, 지역 소멸, 부동산, 노동시장 같은 주제는 장기 데이터와 반복 검증 없이는 정책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 정부와 국회는 정책 수립과 사후 평가 과정에서 관련 실증 연구를 공개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 한국경제 연구를 늘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애국심 호소가 아니라 연구자가 손해 보지 않는 보상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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